HOT Link
ㆍ조회: 8323    
리처드 파인먼

양자 전기 역학의 재정식화

양자 역학이 원자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나서 곧바로 전자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수학적 도구가 개발되었다. 그 결과가 곧 양자 전기 역학이다. 양자 전기 역학은 폴 디랙,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의 연구로 1930년경에 처음 탄생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부정확한 해(解)나 근사치만을 산출해 왔다. 양자 전기 역학이 새로이 정식화되어 놀라운 정확도를 얻게 되는데, 이에 기여한 몇몇 주역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1918-1988)이다.
 학창시절 수학과 과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파인먼은 다른 과목은 몹시 싫어해서 다른 물리학자들처럼 폭넓게 독서하거나 교양을 쌓지도 않았다.

1935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들어간 파인먼은 다시한번 수학에서 불가사의한 소질을 드러냈다. 그는 이론 물리학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학적 절차를 상당히 쌓았다. 그가 4학년 때 쓴 논문 '분자 내의 힘과 긴장'은 인상적인 전조였다. 1939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파인먼은 당시의 유태인에게 불리한 제도적 편견을 극복하고 프린스턴에 들어갔다. 그는 핵물리학의 발전을 이끈 지도자인 존 훨러(John Wheeler)와 작업했는데, 훨러는 금세 파인먼의 소질을 간파했다. 파인먼은 1942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논문은 '
양자역학에서 최소 작용의 원칙'이었다. 그는 20대 초반에 이미 미국의 일류급 이론 물리학자로 평가받게 된다.

파인먼은 원자폭탄 작업에 충원되었고 프린스턴에 있을 때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다. 1943년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졌다. 그는 임계 질량을 통한 중성자 분열과 관련된 복잡한 계산에 독창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도입했다. 또 한 곳에 안전하게 비축할 수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은 얼마인지를 정했고, 1945년 7월 최초의 그는 핵 장치를 시험하는 자리에 있었다. 어마어마한 폭발을 보며 그가 한 생각은 이러했다. 그저 "의기양양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종일관 그것을 작동시키느라 힘들게 일했고 정말 작동할지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늘 이론적 계산에는 믿지 못할 구석이 있다고 생각해 온 터였다. 그것이 내가 맡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자연이 계산한 대로 되고야 만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순간 자연은 우리가 계산한 대로 움직이고 있다."

 1945년부터 코넬 대학에서 조교수로 베테와 함께 연구하면서 양자 전기 역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파인먼이 양자 전기 역학을 수정한 것은 전후 물리학의 주요 사건이다. 기존 이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파인먼이 설명한 대로, "계산하여 해를 구하려고 하면 너무나 풀기 어려운 복잡한 방정식으로 빠져 든다. 제일 근사한 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수정하여 더 정확한 해를 구하려하면 무한량들이 불숙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전자가 전자기장 안에서 예측 가능한 방식을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양자 역학의 용어로 그것을 설명하려면 기본적으로 무한수의 양성자-우리의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으므로 '가상의' 입자들로 알려진-의 방출과 흡수에 말려들게 된다. 볼프강 파울리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같은 인물들이 숱한 시도를 거듭했지만 계산은 계속 불가능한 해를 산출했다. 그런데도 그 근거가 된 이론은 공격할 수가 없었다.

 파인먼의 독특한 접근법은 일련의 다이어그램(뒷날 파인먼 다이어그램으로 불림)을 써서 전자와 광양자, 전자가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광양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이들은 양자 전기 역학이 기술하는 기본 운동들이다. 파인먼 다이어그램은 추상적 계산을 구체화함으로써 숫자들을 '재표준화'하고 필요없는 무한대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 '경로 적분(path integral)' 방법의 결과로 양자 전기 역학은 완전히 새로 태어났으며, 오늘날에는 109 까지 놀라운 정확도를 가지고 계산할 수 있다. 1965년 파인먼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방법으로 양자 전기 역학을 재정식화한 줄리언 슈윙거와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였다. 파인먼의 방법은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으며 그의 다이어그램은 소립자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광범하게 이용되었다.

 파인먼은 1951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으로 옮겨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초저온 상태에서 중력을 무시하는 액체 헬륨의 이상한 성질을 설명하는 이론도 그의 업적이다. 또한 '초유동(超流動)'을 설명하면서 초전도와 관련된 현상을 거의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초전도는 1957년 존 바딘과 리언 쿠퍼, 존 슈리퍼에 의해 밝혀졌다. 파인먼은 베타 붕괴, 즉 방사성 원소의 점차적인 해체로 증명된 '약력'의 움직임에 관한 이론도 발전시켰다.

 파인먼은 패리티 보존 법칙이 약한 상호 작용에서는 지켜지지 않음을 발견하고-1950년대에 실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일생 처음이자 유일하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연 법칙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묘사할 만한 순간을 경험했다. 친구이자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동료인 머리 겔만은 파인먼의 자만을 나무랐다. 하지만 겔만과 파인먼은 약한 상호 작용에 관한 일반 이론을 발전시켜 1958년 '페르미 상호 작용 이론'으로 처음 출간했다. 일반적으로 양자 전기 역학은, 또 파인먼 자신은 원자 구성 입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겔만의 양자 색역학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

파인먼은 때론 강의중에 봉고 드럼을 치기도 한 다채로운 교수였다. 그의 스타일은 생기 있고 유머가 넘쳤는데, 그러면서도 물리학의 폭넓은 주제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1963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물리학 입문을 강의했는데 나중에 '파인먼 물리학 강의(Lectures on Physics)'로 출간되었다. 그 책은 애초에 대학 차원의 교재로 만들어졌지만 독창성 때문에 기초 물리학의 모범적 저술이 되었다. 독자를 위한 여섯 차례의 강의는 1965년 '물리 법칙의 특징'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파인먼 강의 스타일 특유의 느낌을 담은 그 책은 중력, 과학과 수학의 관계, 에너지 보존 법칙, 대칭 법칙, 엔트로피 개념 등에 관한 기초적인 입문서이다. 1985년 '파인먼 씨, 농담하는 거죠'라는 자서전적 회고록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463
1,718,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