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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패러데이
 
- 실험의 귀재였던 '자연철학자(물리학자)'
 
"He smells the truth." - F. W. Kohlrausch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는 1791년 영국 뉴잉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그가 13살 때 마이클은 책 제본업자에게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상점에 있던 모든 과학책들을 큰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21 살의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 경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과학에 헌신하기를 열망하게 되었고, 강연을 열심히 필기하여 그것을 데이비에게 보내면서 일자리를 요청했다. 청년의 열심에 감동한 그 과학자는 패러데이를 그의 실험실에 조수로 데려갔다. 그때부터 패러데이는 전 세기에 걸쳐서 가장 위대한 실험과학자로 성장해갔다. 그러나 그의 초기 연구는 별로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화학과 전기분야에서 괄목할만한 기여를 많이 했다. 데이비에 의해 힌트를 얻은 그는 여러 기체를 압축하여 액화시키는데 성공했다. 1825년에 그가 탄수화물 벤젠을 발견했을 때 그는 유기화학 전 분야의 아버지가 된 셈이었다.

패러데이의 가장 큰 업적은 전자기유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자연의 여러 힘들이 밀접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고 전류에 의해 자석이 힘을 받는 것으로 부터 자기가 전기를 발생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1822년에 이미 그의 노트에 "자기의 전기에로의 변환" 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결국 그는 1831년에 코일 근처로 자석을 움직였을 때 전류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코일에 가해진 전류를 단속시켰을 때 인접한 다른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패러데이는 일반적으로 회로를 통한 자기다발이 변화할 때 회로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보였다.
이 발견으로부터 모든 현대식 발전소의 심장이라고 할수있는 발전기가 개발되었다. 그는 또, 간접적으로 라디오의 발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수학에 능통하지 못했던 그는 이해를 돕기위해 자기력선과 전기력선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나아가 유전체의 연구에 대한 그의 업적을 기려 전기들이의 단위로 패러드(F)가 쓰이게 되었다. 이어서 패러데이는 당시에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5종류의 전기 - 마찰전기, 전기분해에 관련된 전기, 전지로부터의 전기, 자기적 (유도)전기, 열적 전기 - 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점을 보였다. 이 역시 통합을 추구하는 그의 취향에 따른 것이다.
 
1834년에 만들어진 그의 전기분해 법칙은 화학과 전기를 결합시켰다. 그는 또, 양극(anode), 음극(cathode), 음이온(anion), 양이온(cation) 및 전극(electrode)이라는 말을 도입하였다. 그의 말년에 패러데이는 빛의 편광면이 강한 자기장에 의해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역시 빛과 자기가 어떻게든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그의 신념에서 기인하였다. 그의 이 발견으로 맥스웰이 전기, 자기, 그리고 빛을 한데 묶는 전자기이론이 탄생되는데 기여하였다. 그는 또, 중력과 전기사이의 관계를 실험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의 논문 말미에서 그는 "나의 시도는 여기서 끝낸다. 결과는 부정적이다. 중력과 전기사이에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나의 강한 느낌을 어쩌지는 못한다."라고 적었다. 이러한 노력은 초대칭이론으로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1867년 그는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그에 대한 찬사는 계속된다. 마치 어떤 자연의 신비가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고, 또 수없이 실패한 실험에도 낙담하지 않고 중요한 기본적인 발견을 끝내 이루어내고야 말도록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그를 재촉했던 것 같다. 그는 이론물리학에 전기력선과 자기력선으로 표현된 근본 개념을 제공했고, 이는 맥스웰의 손에 의해서 전자기파로 발전된다. 그의 다른 재능에 덧붙여서 그는 또, 생각을 명쾌하고 단순한 언어로 기술하는 능력이 탁월한 매우 유능한 강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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