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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슈뢰딩거
- 파동 역학의 선구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는 20세기 물리학에서 주목할 만한 중요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에 원자핵 둘레의 전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는데, 그 방정식은 서로 별개이면서도 동일한 두 방정식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것은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이요, 두 번째가 막스 보른이 물리학을 통틀어 '지극히 경탄할 만한' 것으로 평가한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이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1887년 8월 12일 빈에서 루돌프 슈뢰딩거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에르빈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슈뢰딩거는 이상적인 중상 계층으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간 1906년은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일련의 논문을 발표한 이듬해였다. 슈뢰딩거는 곧 열심히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10년 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편을 잡았다. 1차 대전 때에는 포병 장교로 복무했으며 용감히 싸워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 세대의 사람들이 그렇듯 슈뢰딩거도 전쟁으로 충격을 받아 인도 철학을 비롯해 철학 연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1925년에는 '나의 세계관' 이란 제목으로 개인적 신념을 쓰기도 했다.

슈뢰딩거는 1921년 취리히 대학에 자리를 잡고 기체의 통계역학, 색채이론, 원자론 등 초기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그는 또한 양자 이론의 진보를 추적했다. 닐스 보어가 1913년에 전자의 움직임에 양자론을 적용한 뒤부터 양자이론은 중대한 문제와 모순을 낳고 있었다. 밝혀진 바와 같이 한 가지 주된 진보는 1924년에 빅토를 루이 드 브로이가 아인슈타인이 광파가 입자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입증한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조건에서 원자 구성 입자가 파도처럼 운동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슈뢰딩거에게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슈뢰딩거가 파동 방정식을 생각해 낸 것은 1925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었다. 그 즈음 그의 감정 상태가 어땠는지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의 아내에게는 애인이 있었고, 슈뢰딩거도 위안삼아 오랜 친구-그녀가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음-와 스위스 알프스의 스키 휴양지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때 그는 예전에 푼 적이 있는 한 공식의 원리가 '참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연구에 들어가 몇 년간 계속한 끝에 수리 물리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미분 방정식을 만든다.

실제로 슈뢰딩거는 드 브로이의 가설을 수학 공식으로 만듦으로써, 전자가 원자의 핵 둘레에 산재하는 점이 아니라 제한된 에너지 수준에서 전자 둘레에 밀려오는 정상파(定常波)임을 보여 주었다. 파동 역학의 개념을 해설한 여섯 편의 논문이 192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중요성은 즉시 인정을 받았다.

슈뢰딩거가 파동 방정식을 개발한 때와 거의 동시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행렬 역학을 개발하여 원자 구성 입자의 운동을 기술했다. 이 공식은 '양자 도약'과 관련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전자를 늘어선 숫자들, 또는 행렬처럼 묘사한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에 비해서는 활용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 그러나 행렬 역학과 슈뢰딩거의 물질파 이론은 그 직후 폴 디랙이 입증했듯이 수학적으로 등가이다. 막스 보른은 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수단으로 확률을 제시했다.

이미 원자 구성 입자가 완전히 기술될 수 없다고 생각한 닐스 보어와는 달리, 슈뢰딩거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론이 원자에 대한 완벽한 설명으로 인도해 주길 바랬다. 아인슈타인처럼 그도 보통의 인과 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통합 이론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파동 역학 이론이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슈뢰딩거는 코펜하겐의 닐스 보어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양자 이론의 철학적 함축에 관해 오래도록 토론했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 도약 개념이 꼭 필요하다면 "내가 양자 이론에 관여한 적이 있다는 것이 유감스럽군요."
보어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당신이 양자 이론을 연구한 것이 너무도 고마운 일입니다. 당신의 파동 역학은 수학적으로 참 명쾌하고 단순하여, 양자 역학의 이전 형태 모두를 능가하는 거대한 진보를 보여 줍니다."

1927년 슈뢰딩거는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막스 플랑크가 물러난 뒤 공석이던 이론 물리학 교수 자리를 이었다. 1933년에는 나치의 부상과 함께 독일을 떠난 첫 번째 과학자 대열에 끼었고 그 해 후반에 영국 물리학자 폴 디랙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눈에 띄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매우 교양있고 명쾌하며 관례를 무시하고 조금은 방탕했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1961년 1월 4일에 세상을 떠나서 알파흐 마을에 묻혔다.

-'존 시몬스' 의 "사이언티스트100"-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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