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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케플러
 
-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의 징검다리

케플러(Johannes Kepler)는 1571년에 독일 부템베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한달 일찍 태어난 조산아로서 병약했지만 찬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튜빙겐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을 중심으로 한 천문학이론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뒤 그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대학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가르쳤다. 그곳에 있는 동안 당대의 위대한 천문학자들 - 갈릴레오와 티코 브라헤 - 과 교류를 가졌다. 티코가 죽었을 때 케플러는 그를 이어서 보헤미아의 루돌프 II 세의 천문기록관 겸 학사가 되었다. 그의 주된 임무는 왕족의 탄생과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점성을 하는 것이었으나 많은 시간을 천문학 연구에 바쳤다
 
케플러의 시대에는 많은 천문학자들이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에 있고, 지구는 그 축을 중심으로 공전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천문학자들은 행성이 원형궤도를 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지구에서 본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즉, 수성과 금성은 저녁이나 새벽하늘 높이 떠 있다가 낮아지지만 항상 태양부근에 있고, 반면에 화성, 목성, 토성은 밤마다 동쪽으로 움직이는데 가끔씩은 서쪽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케플러는 행성궤도를 다른 형태로 취해서 이들 운동을 설명해보기로 작정했다. 화성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거리였고 또, 그가 티코 브라헤의 평생동안의 정확한 관측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케플러는 화성의 운동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 원운동의 모든 가능한 조합을 시도하여 화성의 관측된 위치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비록 한번은 8' [주 : 1' 은 각도 1o의 1/60]의 차이만이 설명되지 않고 남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실패했다. 그는 "이 8' 으로부터 우리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새 이론을 세울 것이다." 라고 말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뿐더러 당시의 불충분했던 수학적 방법에 의존하여 6년 동안의 믿을 수 없는 노력 끝에 그는 해답을 찾았다. 즉, 화성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서 다른 속력을 가지고 타원궤도를 선회한다는 것이다. 1609년에 그는 이 연구결과를 "새로운 천문학"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는 다른 행성들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운동이 화성과 같음을 알아냈다. 그는 또 공전주기가 태양으로부터의 거리와 정확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케플러의 행성운동에 관한 위대한 업적은 "케플러의 법칙"으로 알려진 세 원리로 요약된다.

(1) 태양주위의 각 행성의 궤도는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한 타원이다.
(2) 행성의 궤도상에서의 속력은 행성으로부터 태양을 잇는 직선이 같은 시간동안에 휩쓰는 면적이 같게끔 변화한다.
(3) 행성의 공전주기의 제곱은 태양으로부터 행성까지의 평균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이들 법칙은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에 대해서 알려져 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 나중에 뉴턴은 케플러의 법칙을 이용해서 그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세웠다. 케플러는 갈릴레오로부터 망원경의 발명소식을 들었고, 이어서 광학분야의 선구자적인 값진 일들을 했다. 현대와 같은 형태의 천문망원경을 발명한 사람도 케플러였다. 광학에 대한 그의 책이 1611년에 출간되었는데 그것은 이 분야에서 첫번째였으며, 빛과 렌즈에 대한 광학적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1630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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