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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푸리에

- 거부당한 푸리에 급수전개

죠셉 푸리에(Joseph Fourier ; 1768-1830)는 1768년에 프랑스에서 양복장이인 아버지로 부터 19 형제중의 막내로 태어났다. 8살에 지방 군사학교에 입학한 그는 그때부터 수학적인 재능이 돋보였다. 천한 신분때문에 포병대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그는 1784년에 결국 지방의 군사학교에서 역사, 웅변술과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으며, 뒤에 프랑스혁명에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부패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그는 혁명중에 두번이나 투옥되게 되었고, 한번은 교수형을 선고받기도 하였다. 다행히 죽음을 면한 그는 나폴레온과 깊게 연대하게 되었다. 
나폴레온은 1798년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가서 남부 이집트 일부지역의 통치를 맡겼다. 그곳에서 푸리에는 현대 이집트학의 근간이 된 방대한 21 권의 책을 남겼다. 

1801년 이집트에서 돌아온 푸리에는 글레노블 지역의 제독이 되었고, 그곳에서 열의 전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공무로부터 면제되기를 바랐지만 나폴레온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푸리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그의 수학연구를 계속하도록 강요받았다. 한때 그는 자유롭기 위하여 해외로 유랑할까도 생각하였다.

푸리에의 가장 큰 업적은 19세기에 발간된 가장 중요한 책중의 하나인 "열에 관한 해석적 이론"이며, 1822년에 발간된 이 책에서 그는 유명한 푸리에 급수를 개발, 발표하였다. 그는 1807년에 프랑스 학사원에 그의 결과에 대한 논문을 제출하였었다. 그러나 그 논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라그랑제(Lagrange)가 푸리에 급수가 수렴하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부당했던 그의 논문은 오늘날 순수수학과 수리물리학의 한 이정표로서 찬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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