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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톰슨 (켈빈 경)

- 뉴턴의 곁에

몇 사람의 위대한 과학자들이 영국 물리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 질 수 있지만, 그 중에서 윌리엄 톰슨(William Tomson ; 1824-1907)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톰슨은 그의 절친한 독일인 친구였던 헬름홀쯔(Helmholtz) 만큼 광범위한 범위에 걸친 연구를 하였다. 그는 지질학, 역학, 유체역학, 열역학, 그리고 전기학의 원리들을 밝혀냈다. 실험적인 의문들을 수학적인 문제로 옮기고 또, 그 결과들을 다시 실제 응용에 적용시켜 해석하는 능력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아마도 가장 큰 축복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전기기술자로서 많은 발명을 남겼으며 또, 이론물리학자로, 열역학 제2법칙의 발견자로 유명했다. 
그는 영국 물리학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그의 동료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윌리엄 톰슨은 항상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삶에 접근했다.  어렸을 적, 그와 그의 형은 팽이와 비누방울을 가지고 놀면서, 그것들이 왜 그렇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톰슨이 비누방울을 불면서 연구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사람들은 자주 볼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글라스고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고, 이 때문에 윌리엄의 호기심은 가정에서 항상 지지와 격려를 함께 받을 수가 있었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글라스고 대학에 입학한 그와 형인 제임스는 자주 아버지의 강의에 참석하였고, 다른 학생들이 미처 답하기도 전에 불쑥 대답하곤 했다. 비록 윌리엄은 평생동안 자식이 없었지만, 그의 집안은 삼촌의 호기심을 닮은 조카들로 인해서 소란스러웠으며, 그의 조카들은 힘 닿는데까지 그를 도우려고 노력했다.

 톰슨이 이론물리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16살이 되면서 부터였다. 케임브리지에 입학하기 바로 전인 그해 여름 그는 푸리에(Fourier)의 열에 관한 해석적 이론(Theorie Analytique de la Chaleur)과 라플라스(Laplace)의 천체역학(Mecanique Celeste)을 열심히 읽었다. 어린 소년의 수학능력이 놀랍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자 금방 분명해졌다. 1845년에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기 전에 그는 유명한 수학 우등 졸업시험에서 차석을 차지하였고, 뒤에는 스미스상(Smith Prize)을 받았다.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하나같이 그가 모든 학생들 중에서 가장 창조적인 학생이었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톰슨은 전기이론을 연구하는데 그의 온 정열을 받쳤다. 그는 패러데이(Michael Faraday), 푸아송(Poisson) 및 쿨롱(Coulomb) 의 다양한 방법들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가 가장 활동적이었던 시기는 패러데이의 약간 후이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바로 직전이었다. 그는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의 길을 닦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의 연구는 양적으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점점 깊이도 더해갔다. 1847년 주울(James Prescott Joule)을 처음 만난 후 그는 열역학 분야에 뛰어들어서, 1848년에 그가 제안한 열의 절대량을 나타내는 켈빈온도 눈금의 정의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공헌을 남겼다.

수많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언제까지나 자신의 가장 큰 노력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인내심을 지닌 겸손한 인물이었다. 그의 인내심은 끝내는 성취를 가져왔다. 톰슨은 사회적으로도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사람들을 잘 웃기고 친근한 기질을 지녔다. 그는 게임을 매우 즐겼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시시각각 트럼프란 무엇인지에 관해 일깨워주어야 했지만, 어쨌든 그는 휘스트[주: 두 쌍의 사람이 하는 카드놀이]에 몰두하곤 했다. 어느날, 그는 피크닉 파티에서 한 젊은 여인에게 소개되었고,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녀는 이렇게 더울 때 어떻게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을까 이상하게 여겼다. 톰슨은 궁금하게 여기는 그녀에게 차근차근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들을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해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자상함은 동물에게까지 미쳤고, 특히 그가 기르는 애완동물에게는 더했다. 그가 기르는 앵무새인 "빨간 꼬리 박사"는 그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둘은 함께 휘파람으로 멜로디를 따라 불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외의 남는 시간에 톰슨은 자신의 요트를 타고 항해하기를 즐겼다. 그가 두번 째 부인을 만난 것도 어느 항해중에 생긴 일이었다.
 
1866년 일찍이 나이트 작위를 수여받은 후, 윌리엄 톰슨은 켈빈 경이 되었다. 이것은 그가 받은 수많은 영예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가 받은 최후의 영예는 190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아이작 뉴턴 경의 바로 곁에 묻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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