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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키르히호프

- 흑체복사의 문제를 제기한 분광학의 선구자

역사서들에서는 자주 무시되지만 구스타프 키르히호프(Gustabv Kirchhoff;
1824-1887)는 20세기 물리학의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1859년에 그는 화학 원소들이 저마다 특징적인 광선 스펙트럼을 발산한다는 일반 원리를 발표하며 로베르트 분젠과 함께 분광학이라는 유력한 분석 수단을 수립했다. 분광학은 자연계의 모든 원소를 구별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키르히호프는 곧 그것이 훨씬 폭넓은 의미를 지님을 깨달았다. 즉 분광학이 천체의 화학적 성분을 판별하는 새로운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키르히호프는 곧 '흑체 복사'라는 까다롭지만 매우 중대한 문제를 물리학계에 제기했다. 영향력있는 교수인 키르히호프는 "경험의 수량적 진술에서 직접적이고 복잡하지 않은 접근 방법과 단순한 개념을 써서 명료함과 엄격함을 추구했다"고 레온 로젠펠드(Leon Rosenfeld)는 썼다.

구스타프 로베르트 키르히호프는 1824년 3월 12일 현재의 러시아 프로이센 영토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키르히호프는 일찍이 수학에 관심을 보였으며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새로 등장한 수리물리학과 전자기학 이론에 관심을 가진 광물학자 프란츠 노이만(Franz Neumann) 밑에서 공부했다. 1847년에 졸업한 뒤 파리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다가 1848년 혁명으로 중단했다. 대신에 먼저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강의를 시작했으며, 1850년에 브레슬라우 대학의 조교수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로베르트 분젠을 만나 우정을 쌓았다. 분젠은 '분젠 버너'의 사용을 대중화한 무기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키르히호프의 법칙들은 전기저항과 전류의 관계를 설명한 옴(Ohm)의 법칙에서 오류의 원인을 밝혀내면서, 전도체 회로망에서 전위(電位)와 전류를 측정하는 적절한 공식들을 제공했다. 1857년 전기가 전달되는 방식에 관한 일반 이론을 제시함으로써 전자기학에 또 하나의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는 실험 결과로 얻은값을 바탕으로 전류의 전달 속도를 상수로 결정했다. 키르히호프는 이 상수가 측정된 빛의 속도와 거의 같다는 사실에 주목했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놓치고 만다. 그것을 우연의 일치로 여긴 것이다. 이리하여 빛이 전자기 스펙트럼의 일종이라고 제안하는 일은 제임스 클럭 맥스웰의 몫으로 남았다.

키르히호프의 가장 중요한 연구는 1859년부터 1862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분석수단 으로서 분광학이 탄생한 일과 관계가 있다. 키르히호프가 분젠의 실험실을 방문했을 때, 분젠은 불에 태웠을 때 불꽃에 특정한 색깔들을 더해 주는 여러가지 소금을 분석하고 있었다. 분젠은 색유리를 써서 불꽃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키르히호프는 프리즘을 통한 분석을 제안했고, 곧바로 분광학의 중요성은 분명해졌다. 원래 아이작 뉴턴이 빛의 복합적 성질을 증명한데서 유래한 분광학이 돌연 광대한 응용 분야를 새로 얻게 된 것이다. 원소들은 저마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측정할 수 있는 일정한 스펙트럼을 보였다.


에이브러햄 페이스는 "그 결과야말로 가장 중요했다"고 썼다. 각각의 원소와 화합물은 지문처럼 독특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얼마뒤에 스펙트럼 분석이 "지금까지 완전히 닫혀 있던 영역에 대한 화학적 탐구"를 약속한다고 적었다. 그들은 이미 알려진 원소들을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원소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증류시킨 광천수에서 나온 소금을 분석하면서 세슘이라고 명명된 원소에 속한 청색 스펙트럼 광선을 검출했다. 1862년 분젠은 비늘 운모를 연구해서 알칼리 금속을 발견하고 루비듐 이라 이름했는데, 이는 오늘날 원자 시계에 쓰이고 있다. 분광학의 활용으로 19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미 여남은 개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었으며 이 분야는 어마어마하게 팽창했다. 1900년부터 1912년까지 케이저(H.G.J.Kayser)는 5,000쪽에 달하는 여섯권짜리 책 '분광학 개론'을 펴냈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의 스펙트럼 분석 결과 가운데 하나가 특히 중요했다. 키르히호프는 일명 '프라운호퍼(Fraunhofer)의 선'이라고 하는 일광 스펙트럼의 어두운 선들이 가열한 소듐의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노란색 선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듐 불꽃에서 나오는 빛으로 태양 스펙트럼을 관찰하자 이 어두운 선들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근본적인 발견이 눈 앞에 있음을 인식한 키르히호프는 다음과 같은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스펙트럼 선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은 곧 스펙트럼선들의 흡수를 뜻하는데, 이는 태양의 대기가 소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또 다른 화학 원소의 스펙트럼도 마찬가지로 뚜렷한 어두운 띠를 보여 줄 것이다.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스펙트럼의 비교를 통해 태양의 조성과 천체의 화학적 성분을 밝히는 데 그들의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게 되었다. 키르히호프는 "(분광학이)태양의 대기와 그보다 더 밝은 항성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썼다. 실제로 그랬으며, 이 생각은 뒤에 우주 전체로 확대된다. 1861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원소들의 스펙트럼 선을 태양의 그것과 비교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헬륨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20세기 들어 분광학의 응용은 원자론과 천체 물리학의 발전을 촉진한 기본 기술이었다.

키르히호프는 프라운호퍼의 선을 연구한 결과 키르히호프의 법칙으로 알려진 열역학상의 발산과 복사에 관한 일반 이론을 개발했다. 수식의 형태이지만 이 법칙이 뜻하는 바는 간단히 말해서 동일한 온도에서 어떤 물체가 빛을 발산하는 능력은 그것을 흡수하는 능력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키르히호프는 복사법칙이 낳은 한가지 결과가 40년 동안 물리학계를 괴롭히게 되는 '흑체 문제'이다. 이 독특하지만 근본적인 난제가 생겨나게 된 것은 흑체, 가령 쇠막대기를 가열하면 열과 빛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흑체의 복사는 처음에는 보이지 않거나 적외선이며 그 다음에는 눈에 보이며 적열 상태가 된다. 결국에는 백열로 변하는데, 이는 스펙트럼의 모든 색깔을 발산했음을 의미한다. 물체를 이루는 물질이 아니라 물체에 가열되는 온도에만 의존하는 스펙트럼 복사는 고전 물리학으로는 예측할수 없는 것이었다. 키르히호프는 '이것의 전반적인 기능을 찾아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했다. 흑체문제는 에너지를 이해하는데서 일반적인 중요성을 띠므로 끝내 해결을 보게된다. 1900년에 막스 플랑크가 양자를 발견했고, 이는 20세기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추앙받는 교수였지만 뛰어난 강연자는 아니었던 키르히호프는 사고로 불구가 되어 목발이나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의 훌륭한 유머와 기지는 빛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일의 부담을 덜고 베를린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가된 1875년까지 실험 작업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1886년까지 재직하다가 퇴임했으며, 얼마 뒤인 1887년 10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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