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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헨릭 데이빗 보어
 
- 선 스펙트럼을 설명한 원자모형의 영웅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는 1885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1903년 코펜하겐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한 그는 4년 뒤 액체의 표면장력에 관한 주의깊은 연구로 덴마크 왕립학술원이 주는 금메달을 받았다. 그는 또 대학원 연구에서 금속의 전기, 자기, 열적 특성을 조사하였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전자에 관한 이론으로는 부적합한 것을 알게 되었다. 1911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케임브릿지 대학의 카벤디쉬 연구소에서 톰슨(J. J. Thomson)의 지도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언어(외국어)장벽 때문에 숱한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1912년 초 케임브릿지를 떠난 보어는 러더포드를 만난다. 바로 전 해에 러더포드는 그의 원자모형을 발표한 바 있고, 보어는 그 모형에 관심을 가졌는데 러더포드의 원자모형이 알파입자의 산란을 잘 설명한다는 점과, 반면에 분명히 설명해야 할 원자의 안정도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코펜하겐에 돌아온 그는 원자 중심의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들의 안정된 분포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는 이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계산에서 수소는 한개의 전자를 갖고, 헬륨은 두개의 전자, 리튬은 세개의 전자를 가져야만 한다는 암시를 얻었다.


1913년 보어의 한 동료가 수소의 선스펙트럼에 관한 발머(Johann Balmer)의 식을 귀뜸하였다. 보어는 후에 "발머의 식을 보자마자 모든 것이 내게 분명해졌다."고 술회했다. 그뒤 한달도 못되어서 그는 그의 원자구조에 관한 첫 논문을 완성하였다.

보어는 그의 원자모형을 구상할 때 28살의 아직 젊은 나이였다. 그 뒤로도 그는 원자물리와 원자핵물리학에 많은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업적은 그가 그후 20여년간 발전되온 양자이론에 보여준 선도적인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닐스 보어는 1922년에 원자구조와 원자로부터의 내비침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1943년 나치의 추적을 피하여 덴마크를 떠날 때 라우에(Max von Laue)와 후랑크(James Franck)가 맏겨둔 노벨상의 금메달들을 산에 녹여 그의 연구실 선반위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후 그가 다시 코펜하겐에 돌아왔을 때 보어는 산용액의 금을 침전시켜 다시 금메달로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닐스 보어(아버지)가 그의 원자모형으로 노벨상을 받은 해(1922)에 태어난 그의 셋째 아들(보어는 다섯 아들을 두었다.) 아지(Aage) 보어는 자라서 1975년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원자핵모형에 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는다.
 
(사진의 Bohr 부자는 모두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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