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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 퀴리

-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함께 받은 핵물리학의 어머니

마리 퀴리(Mari Curie ; 1867-1934) 는 폴란드인 교사 부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난 그녀는 16세에 우등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수학과 물리학 교사였던 아버지의 투자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교사 노릇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그녀의 열의는 곧 그녀의 모든 상황을 극복하게 하였고, 마침내 그녀는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녀는 시험결과 물리학과 수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수석과 차석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학업을 계속 하던중, 피에르 퀴리를 만났고, 두사람의 관계는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결혼 후, 마리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방사능에 관해서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우라늄광(pitchblende)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우라늄에서만 방출된다고 보기에는 너무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리는 피에르의 도움으로 우라늄 광산에서 8톤의 광석 폐기물을 사들였다.
그녀는 광석을 정련시키는 기술을 완전히 익혔고, 지하에 있는 환기도 안되는 실험실에서 4년간을 연구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폴로늄과 라듐 원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폴로니움은 그녀의 조국 폴랜드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금속상태의 순수한 라듐을 얻기위해 진력한 마리는 10mg 의 라듐을 생산해내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같은 해에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1859-1906), 벡크렐(Henri Becquerel)과 함께 방사능의 발견에 관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퀴리 부인과 그녀의 남편은 메달과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었지만, 보다 나은 실험실과 장비는 받지 못했다. 남편 피에르 퀴리가 1906년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의 자리를 이어서 마리 퀴리는 교수가 되었다. 그녀는 소르본 대학 최초의 여자교수였다. 1911년 마리는 순수한 우라늄을 정제해낸 공로로 그녀의 두번째 노벨상(화학상)을 수상하였다. 퀴리 부부가 연구를 시작할때만 해도 방사능의 위험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두 사람은 새로 발견한 원소에 넋을 빼았겼고 주의하지도 않았다. 피에르는 라듐이든 시험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방사능 화상을 입기도 했으며 마리는 붉게타는 방사능 물질을 침대 머리맡에다 두기도 했다. 마리는 만년에  자신이 발견한 방사능이 원인이 되어서 일으킨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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