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Link
ㆍ조회: 5087    

로버트 보일

- 실험의 중요성을 갈파한 근대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의 아버지인 Cork 백작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보일은 거짓말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예민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몹시 좋아했다. 그는 일생동안 그칠 줄 모르게 책을 읽었고, 후에 한 의사가 그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를 했을 정도였다. 즉, "그의 지나친 독서는 두뇌를 약하게 만들고, 충혈을 일으키며 또, 폐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 

그는 끊임없이 공부하였지만, 자신의 지식을 새로운 연구로 발전시키는 데는 주저했다. 그의 첫번째 과학논문은 "공기의 탄성과 무게에 대하여(On the spring and weight of air)"였다. 그는 여기에 우리가 현재 보일의 법칙이라 부르고 있는 내용의 초안을 밝혔다. 보일의 법칙은 기체의 압력이 밀도에 직접 비례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의 철학자 홉스(Hobbes)는 이 논문을 비난하였다. 즉, 그는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의 깊은 추론을 통해서 실제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보일은 쓸데없이 실험데이터를 얻느라 시간을 낭비했다고 주장하였다.

보일은 비록 뛰어난 물리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1662년에 영국 학술원의 설립을 도왔으며, 뉴턴이 나타나기까지 학술원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 그는 자주 공공앞에서 실험을 행하였고, 과학연구의 적절한 응용을 주창하였으며, 특히 실험자료의 축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고 있다.

471
1,718,8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