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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마리 암페어
 
-전기와 자기의 이론을 확립한 이론물리학자의 귀감

암페어(Andre Marie Ampere; 1775∼1836)는 1775년 프랑스 리용부근의 뽈레뮤라는 마을에서 대마상을 하는 부유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비록 상인이었으나 그 지방의 유지였으며, 학식과 덕망이 있어 아들인 암페어를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교육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으나 암페어는 그러한 고전어 보다는 수학에 소질이 있어,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예리한 판단력은 매우 비범하여, 이미 12살 때에 대수학과 기하학을 거의 터득하여 수학의 계산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1789년에 프랑스에는 대혁명이 일어나 반대파에 대한 대숙청이 실시되었다. 조금이라도 왕당파에 가깝다고 인정만 되면 사정 없이 처형을 하는 공포정치가 시작되었다. 암페어가 18세가 되던 1793년에 리용 마을에도 폭동이 일어났다. 부유하고 지방 유지인 암페어의 아버지도 왕당파에 가깝다고 하여, 아들인 암페어가 보는 앞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그 끔찍한 사건이 있고 난 후 암페어의 가정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암페어의 충격와 분노는 그로 하여금 더욱 공부에 열중하게 한 채찍이 되었다. 가정이 몰락한 그는 생활을 위해 가정교사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다.
끔직한 충격을 받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다시 소생케 한 사람은 그의 부인 쥘리 카롱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남달리 뜨거웠다. 암페어의 연구와 실험실에는 그의 사랑하는 쥘리 카롱부인이 언제나 지키고 있어, 뒷바라지는 물론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암페어는 리용 북쪽에 있는 고등학교의 교사로 부임하고 부터 가정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02년에는 그동안 열심히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1803년에 가장 사랑하던 그의 부인이 남편과 아들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다시 실의에 빠져 한때는 모든 연구를 포기하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는 정신없이 종종 멍청하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도 했다. 실의에 빠져있던 암페어에게 소생의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황제 나폴레옹은 암페어를 불러 황제가 설립한 파리공과대학의 교수로 임명했다. 그는 파리공과대학에서 수학과 역학교수가 되어 점차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암페어가 교수가 되면서부터 다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석한 두뇌와 왕성한 욕구는 변수의 계산법, 역학, 전기와 자기, 기체이론, 분자물리학, 지구이론, 심지어는 동물생리학 분야에까지 다양하고 깊이 있게 번저 나갔다.

왕성하고 다양한 활동과 연구의 업적으로 그는 학자로서 최고의 명예인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20년 9월 파리에 있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덴마크의 과학자 크리스찬 에르스텟(H. C. Oersted)이 전기와 자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강연을 가장 열심히 청강한 사람은 바로 40대의 젊은 과학자 암페어 교수였다. 그는 에르스텟의 논문을 흥미 있게 읽고, 그의 실험을 확인했다.
그리고 꼭 1주일만에 암페어는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이론과 실험을 통해 완벽한 설명을 실은 논문을 발표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전류의 세기와 두 전류 도선간의 거리 및 인력과 반발력 사이의 관계를 수식으로 밝혔으며, 이 식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활용되고 있다.  또 암페어는 자기효과의 크기는 사용된 코일의 잠긴 회수에 따른다는 것을 알아냈고, 서로 반대되는 두 자극은 코일의 열려진 양쪽 끝에 생긴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결론적으로, 자기는 자석이나 쇠막대 없이 단지 전기의 힘만으로도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명확히 밝혀 주었다. 그는 또 솔레노이드를 써서 쇠바늘을 자화시켜 강력한 영구자석을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그는 전류의 흐름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발견들을 정리하여 1823년에 전기와 자기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다. 그 연구에서 암페어는 영구자석 안에 있는 자기의 존재는 분자전류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암페어의 독창적인 연구와 업적에 뒤이어 나온 새로운 발견, 발명은 그의 명성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영국의 제임스 클럭 맥스웰은, 두 전류 사이의 역학적 작용에 관한 암페어의 수학적, 물리학적 발견과 연구 업적은 과학 발달사에서 가장 빛나는 것 중의 하나라고 극찬하였다.
암페어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세상을 떠난지 60년 후에 후세의 과학자들은 전류의 실용적 단위를 그의 이름을 따서 "암페어"라고 이름지어 부르고 있다.
 
암페어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청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불행하게도 혁명군의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뒤이어 사랑하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보낸 비운을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비통과 외로움을 딛고 전기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정립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그의 묘비에는 라틴어로 "마침내 나는 행복했다"라고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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